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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 선생 이야기-②] 야은 길재의 유적을 찾아서

by 스마트시티

‘구미 삼행시’에서는 길재 선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로 길재 선생의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길재 선생의 유적지를 찾아서 출발해 봅니다!


선산 삼강정려

고아읍 봉한리 마을에서 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1795년(정조 19년)에 선산부사 이채가 세운 것이다. 삼강은 유교적 실천윤리인 충(忠), 효(孝), 열(烈)을 말하는 것이며, 정려는 이러한 것을 잘 지킨 이들의 정신을 받들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우는 징표이다. 충절에 길재, 효행에 배숙기, 열녀가 한 마을에서 태어나 정려가 내림으로 정조 때 나란히 비를 세우고 ‘백세청풍(百世淸風) 팔년고등(八年孤燈)’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 삼강정려(三綱旌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915-3

 

채미정

1768년(영조 44년)에 건립된 길재 선생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히는 채미정은 금오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채미(採薇)는 고사리를 꺾는다는 뜻으로 길재의 충절을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은나라의 충신 백이와 숙제의 충절에 못지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부속 유적으로는 채미정을 보호하는 구인재(求人齋)와 계류(溪流)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석교(石橋), 유허비각(遺墟碑閣)이 있으며 금오산의 수려한 경관과 어울려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채미정(採薇亭)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249

 

야은사

야은사는 1403년(태종 3년)에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던 남재(南在)가 길재가 거처하던 곳에 가묘(家廟)로 사당을 건립한 것이다. 그 뒤에 길재의 유상(遺像)을 봉안하고 향사하다가 건물이 퇴락하여 1583년(선조 16년)에 선산부사 유덕수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1602년에 선산부사 김용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그 뒤 순조 때 이르러 크게 중수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72년 후손이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사당 안에는 충절(忠節)이라는 시호교지와 ‘야은문집(冶隱文集)의 판각본 및 문집 1백 여 권이 보존되어 있다.

▲야은사(冶隱祠)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

 

충효당

충효당은 오산서원 사당 앞에 지은 회당(會堂)이었다. 오산서원은 1587년(선조 20년) 인동현감 유운룡이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길재의 묘 앞 나월봉 아래에 세운 사당이다.  1871년(고종 8) 서원이 훼철되자 현 위치(구미시 도량동 720번지)로 이건하였고, 1948년 3월에 중건하였다. 현재 충효당 내부에는 숙종어제필(肅宗御製筆)의 판각과 이조판서 조상우의 어제운(御製韻), 선산부사 조두수의 어제운(御製韻)등의 목각판, 율리전원(栗里田園)의 편액이 걸려있다.

▲충효당(忠孝堂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 720번지

 

이번주에 꽤 많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지는데요,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길재 선생 유적지를 찾아 길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봄 기운도 물씬 느껴 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길재 선생 이야기에서는 그가 남긴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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