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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구미

구미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성리학이 있는 '성리학역사관'

by 스마트시티

 

구미에 가면 만나볼 수 있는 2020년 10월에 개관한 구미성리학역사관은 약 2년 가까이 자체적으로 유학, 성리학에 대한 자료 수집과 위상 확립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곳입니다. 또한, 유학의 개조인 공자와 관련된 탁본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유학의 개조(開祖)인 공자를 기리면서 곡부(曲阜) 비림(碑林)과 서안(西安) 비림(碑林) 등지에 남아있는 유적과 자취를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구미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한 길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야은 길재는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출신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정치격변기에 불사이군의 절의 정신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정몽주를 잇는 조선 성리학의 원류로서 구미가 ‘조선 성리학의 산실’이라는 명성과 지위를 이루는 데에 바탕을 제공했던 사람입니다.

 

 

구미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구미(선산)에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구미의 역사는 이곳에서 성리학의 흐름과 함께 볼 수 있는데 야은 길재의 인생사와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로 336-13에 자리한 구미성리학역사관은 구미시 최초의 제1종 공립전문박물관입니다. 금오산 저수지가 바로 옆에 있어서 금오산의 사계절과 함께 방문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구미역사관, 조선 성리학의 학문 경향과 계보에 대해 전시한 성리학전시관,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담은 기획전시관 등 3개 동의 전시실과 성리학 관련 도서를 열람하고 목판 탁본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사랑방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 자식 역할부터 남편이나 아내 역할을 하고, 다시 부모 역할을 하는 강요 아닌 강요를 당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라는 말의 이면에는 먼저 인간이어야 했던 것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윌던을 쓴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희의 성리학이 이(理)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학이라 부르고 육구연, 왕수인 등의 학문은 상대적으로 마음(心)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를 심학(心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삼강행실도도 있는데 삼강행실도는 1431년(세종 13)에 최초로 편찬하였습니다. 언해본에 실린 인물은 한문본의 33인 중에서, 효자, 충신, 열녀 각각 35인을 뽑아 모두 105인을 그림과 함께 엮은 책입니다.

 

 

구미의 선산에는 10절이 남아 있습니다. 선산부사였던 김종직이 1477년 선산의 자랑 열 가지를 찬양한 시로 선산지리도에 수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미의 옛지도도 이곳에 있습니다. 고려가 패망을 앞두고 있을 때 유학자들은 세상에 도가 사라졌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부는 은둔을 통해 자신의 지조를 지키려고 했는데 야은 길재도 그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선산 인근 읍내가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인재들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16세기 이후에 지식인층이 점차 읍내를 벗어나 이주하면서 구미의 들성, 해평, 봉곡 등지가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구미는 삼성을 비롯하여 산업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낙동강과 금오산이 있는 이곳은 농업뿐만이 아니라 낙동강을 이용한 교역이 활발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시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고 도시의 이미지도 바뀌어갑니다. 구미의 역사와 성리학을 알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단의 100% 순수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된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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