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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이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작고한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계신 것만 같은데요. 그 이유는 작가의 작품들이 꾸준히 출판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 일상 등 그동안 작가가 천착한 키워드들을 들여다보면 별다를 게 없는 주제이지만, 읽다보면 삶의 진정한 모습을 깨우치는 깊은 통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 줄 소설들. 우리들은 앞으로도 박완서 작가의 책을 자주 찾을 것 같습니다.

 

“내 경험으로 문학은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위안이 되고 힘이 돼 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내 문학도 남에게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고통에만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해서 무기력해져버린 삶에도 위안이 필요하죠.”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중

 

 

우리가 참 아끼는 사람, 소설가 박완서(1931~2011)

박완서 작가는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늦은 데뷔였지만, 왕성한 활동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확고한 위치를 굳히며 대표 작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 작가는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했습니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 전업 주부로 지내다가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됩니다.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게 됩니다.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온 소설가 박완서.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해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한국 모계 문학의 수원지라 불리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한국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녀는 2011년 1월 22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이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스무 살, 순수한 날의 기억 <나목>

세계사/2012(초판 1970)

 

“특히 폐점 후 이맘때 온종일 시야를 가로막던 누런 군복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청소부 아줌마들이 물뿌리개로 타일 바닥을 축여가며 비질할 무렵이면 공기가 어찌나 투명해지는지 나는 그녀들이 날렵한 솜씨로 비틀어 올린 립스틱의 빤들한 대가리의 빛깔들이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는 것까지도 식별해낼 수가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인 동시에 대표작인 <나목>. 40세에 썼지만, 20세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쓴 작가가 가장 사랑한 작품입니다.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창작 활동을 펼쳐온 그녀가 생애 마지막까지 직접 보고 다듬고 매만진 아름다운 유작이기도 한 <나목>은 한국전쟁 후 미8군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던 시절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으로 1.4후퇴 후, 암담하고 불안한 시기에 텅 빈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의 전쟁의 상흔과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등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저자의 삶은 물론, 그녀를 닮은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지식하우스/2005(초판 1992)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소재로 사용했던 박완서가 오롯이 본인의 경험만을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개풍 본가에서 산꼭대기에 위치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서울 산동네로 이사한 소녀가 겪은 문화적 충격, 일제강점기 국민학생으로서의 기억, 창씨개명 경험, 세계2차대전의 종결, 서울대 입학, 그리고 6·25까지의 격변기를 지낸 작가의 유년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되어 다시금 베스트셀러로 부상, 수많은 독자에게 유년의 기억을 상기시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메마른 현실을 ‘따뜻하게’ 끌어안기 <친절한 복희씨>

문학과지성사/2007


 

“문득 이게 마지막 창작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삶의 정곡을 찌르는 재치와 유머, 원숙한 지혜가 담긴 박완서의 소설집. 2001년 제1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그리움을 위하여>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제목을 패러디한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해, 여유 있는 은퇴자의 평화로운 삶 속에서 젊은 시절의 갖가지 신산을 그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마흔아홉 살>, 그리고 가장 최근 작품인 <그래도 해피 앤드> 등 총 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작품 속 화자들은 ‘그리움’이란 말과 통하는 회고에 젖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가는 인간적인 삶,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철학적 궁구를 억지스럽지 않게 이끌어냅니다. 수록작들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었던 것으로, 메마른 현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박완서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완서, 30년의 말자취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달/2016


 

“현대처럼 정신적 가치가 붕괴되고 믿을 만한 질서와 규범의 밑받침이 없는 사회에서 살려면 많이 타협해야 하는데 ‘마지막 사람다움’을 짓밟는 힘에 대해서는 ‘오기’를 부려야 할 것 같아요. 이러한 사회 속에서의 이상형은 ‘수치를 알고도 당당한 사람, 즉 부끄러움과 오기를 다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 아꼈던 사람>은 박완서 작가의 생전 인터뷰를 모아서 엮은 대담집입니다. 맏딸이자 경운박물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호원숙 씨가 엮은 책으로 문인과 문학평론가들이 살아생전 나눈 대화를 엮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어떤 말을 했을까요. 많은 기록 중에서 서강대학교 국문과 김승희 교수,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이사, 장석남 시인,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 김연수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 신형철 문학평론가, 박혜경 문학평론가, 이렇게 9명이 진행했던 대담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5주기에 부치는 이병률 시인의 새 글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박완서의 30년이 <우리가 참 아꼈던 사람>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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