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형도 시인 ⓒ 문학과지성사>


단 한 권의 책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작가들이 있는데요. 이번 ‘책으로 만나는 한국의 대표 문인④’의 주인공 기형도 시인도 그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요절을 했기 때문에 그의 시는 더 보고 싶어도 더 볼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움이 배가 됩니다. 예민한 감각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가만히 찌르던 시인 기형도.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7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의 명시들은 우리의 마음에 묵직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1960~1989)


“… /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입 속의 검은 잎> 수록작, 문학과지성사)


기형도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9년 사망 전까지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가져보지 못했는데요. 시집 출판을 준비하던 시기에 요절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개월 뒤 평론가 김현과 소설가 성석제 등 지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그의 명시를 책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현재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매년 8,000부 이상을 찍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증쇄 횟수만 56쇄, 팔려 나간 부수는 28만 5,000부에 이를 정도입니다.


그의 시는 영화 제목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한데요. 질투는 나의 힘, 빈 집, 봄날은 간다 등이 바로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생활에서 시를 많이 접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그는 낯선 인물이 아닌데요. 특히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엄마 걱정’으로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 /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중에서, <입 속의 검은 잎> 수록작, 문학과지성사)


이 시는 실제 기형도 시인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가던 어머니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요. ‘엄마 걱정’처럼 그는 우울하며 검은 이미지의 시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구절로 시작되어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마무리되는 그의 시 ‘빈 집’. 아마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시가 아닐까 싶은데요. 요절한 시인이기 때문에 그를 떠올릴 때 많은 독자들이 떠올리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의 죽음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데요.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종로 3가 파고다 극장의 한 좌석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사인은 뇌졸중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죽음은 본인에게도 지인들에게도 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큰 슬픔인데요. 그래서 여전히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책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외에도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과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과 5주기 추모 문집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솔출판사) 등이 있는데요. 기형도 시인이 남겼던 에세이 혹은 발표 및 미발표 시, 단편소설들이 책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소식도 있는데요. 바로 기형도 문학관이 곧 설립된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4월에 이미 착공했고, 내년에 문을 열 예정입니다.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기형도 문화공원 내 세워질 예정으로 시인의 유가족들이 기증한 육필 원고 등을 만나볼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1987년 유럽 여행 중 ⓒ 문학과지성사>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입 속의 검은 잎> 수록작, 문학과지성사) 


그의 자조적인 반성처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의 시들.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형도의 죽음은, 그의 시는 버겁고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서 무거움을 손에 쥐고 싶은 날 불현듯 잊었던 그를 떠올리기도 하나 봅니다. 질책이 되고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기형도 시인이었습니다. 


댓글
댓글쓰기 폼